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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꿈
   
from : 211.235.73.216     hit : 3502    date : 2009.01.13 pm 02:04:05
  name : 김영훈   homepage :
나뭇가지에 축 처진 가죽처럼 시계판이 걸려 있는 달리의 그림을 보며
들어나지 않는 삶의 배후와 그 예사롭지 않은 징후를 예감해가던 그날
오래된 일기장의 표지만큼 빛바랜 기억 속을 낙타가 걷고 있다  
해질 녁 겨울 산 가파른 협곡을 따라 걷는 낙타의 그림자엔
등에 얹혀진 짐의 부피가 나뭇가지에 걸린 시계판보다 더 길게 처져 있다

한 발 한 발 풀 한 포기 없는 메마른 사막을 가로지르며 키워온 꿈
이마에 훤히 내려앉던 밝은 별들과 나누었던 오래된 이야기들은 잊을 수 없다    
그 꿈과 이야기 속을 순환하고 있는 온 몸의 피는 한 줌 같은 심장이 덥이고 있다
맥박은 요동치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천천히 여물을 씹으며 기다렸다
삶은 분노하는 곳이 아니었으므로 침을 씹으며 인고한 시간
흉측하게 털이 벗겨진 등의 혹은 비고 그 빈 공간엔 삶의 오래된 것들이 부유하고 있다
천천히 삶의 파편들을 되새김하며 여물을 씹듯 눈 내리는 겨울 협곡을 지나고 있다
입술을 부빌 때마다 방울소리가 겨울 산의 숨소리처럼 협곡의 벽을 치고 구른다   

더운 피 한 줌으로 덥여온 몸이 식어가는 지 심장은 이제 곧 터질 듯하다
왜 이 길을 와야 했는지 알았다면 오지 않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로를 결정하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었다
모난 돌에 채여 생긴 발등의 상처는 걸어온 행로를 말하지 않는다
아물지 않은 상처는 걷는 것만이 나의 몫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오늘도 빙설을 품은 협곡의 밤은 차고 나뭇가지에 밝은 별이 몇 개 걸려있다
깊은 밤에는 아무도 모르게 그 중 몇 개의 별들이 바람 속에 운다
별이 울면 별이 울었다는 증거로 새벽 풀잎마다 이슬이 맺혔다   

그래, 살아있었다
지금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이 눈물을 막을 수 없을 만큼 살아있었다  
등이 가렵다, 피가 나도록 긁는다, 너에 대한 기억들이 터져 나온다
사랑할 수 없다면 이 겨울 산에서 지워지고 싶다
많은 죽음이 삶을 그렇게 통과했던 것처럼   
사랑하기에 슬프고 고통스럽게 너를 통과한다
등이 가렵다


양민주 시가 좋아 몇번을 읽었습니다. 천재적 예술가들은 이를 발휘할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나지요? 2009.07.23 [수정]  [삭제]